대화
가족간에 대화가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텔레비전, 휴대전화, 인터넷 등 급속도로 발달된 정보통신의 홍수속에서 대화의 끈은 끊어지고 가족 구성원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으로 숨어들고 있다. 비단, 정보통신의 비약적인 발달 뿐 아니라 교육, 직장, 사춘기의 방황이 서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가족간의 대화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화가 없으니 오해는 당연히 생기고 입시지옥의 스트레스속에 사춘기의 방황이 겹쳐 갈수록 대화없는 생활은 누적되는 경험은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행복의 스위치>의 레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 목격한 아버지에 대한 오해, 무뚝뚝한 아버지의 표현(레이는 비하로 받아들인다)등 레이의 마음에는 상처와 오해만 쌓여간다.

직장생활과 저 너머 꿈에 대하여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을까? 아니, 기본적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미래와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고 탐색하는 기회가 얼마나 많이 주어지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돈=행복'이라는 공식을 일반화 한지 오래고, 모두들 돈 잘 버는 직업을 찾아 대학을 가고 사회에 뛰어든다. 번듯한 대학을 왔다면 대기업에 취업을 해야하는 것이고, 법학을 전공했다면 당연히 사법고시를 통해 검사나 판사가 되어야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질데로 높아져 사회전반적으로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사람이 필요한 곳에서는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미래가 정해진 엘리트들이 모인 것만 같은 KAIST 학생들 중에는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

이들은 과연 자신이 설계하고 저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는 꿈을 찾아 대기업과 의학전문대학원에 몰려드는 것인가? 아니면 '돈=행복'이라는 불변의 법칙에 이끌려 너도나도 대기업과 의학전문대학원에 몰려들고 있는 것인가?

레이에게도 꿈은 먼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직장생활을 하지만 언제까지 광고홍보 그림만 그리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언제 이름을 날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 있을지 암담하다. 아버지에게 큰 소리치고 집을 나온 레이지만 너무나 암담하고 자신이 비참해 보여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행복의 스위치

행복의 스위치

행복의 스위치

저 너머 보일 것 같은 꿈은 보이지 않고, 홧김에 사표를 냈지만 일자리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언니의 편지를 받고 내려간 집에서 내키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가전제품 가게일을 돕게 된다. 당장 돈 들어올 구멍이 없으니 어거지로 시작한 가게일이지만 역시나 마음에 맞지 않는다. 그것보다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죽거나 이사 간 고객카드 한 장 버리지 않고 빼곡히 모아놓는 고객장부, 시도때도 없이 사용법을 알려달라는 전화, 이미 설치한 가전제품 자리 옮겨주기...모두 못마땅하고 비위에 맞지 않는 일들 뿐이다. 투덜대며 어느정도 일에 적응 될 즈음 레이의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다.

고객의 집 구조며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찾아오는 변화는 결국 퇴직한 아들과 그 아들의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의 일을 도와주면서 일대 변화를 일으킨다.
귀가 들리지 않아 목소리가 작은 며느리의 말을 듣지 못하는 할머니를 발견한 레이는 그동안 쌓여있던 오해를 풀어주게 되고, 할머니가 보청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그리고 어렴풋이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의 뜻을 알아간다.

"물건은 팔 때보다 팔고 나서가 더 중요한 것이야"

그리고 조금씩 풀려가는 아버지에 대한 오해.  "나는 내 꿈을 위해 나 혼자 뛰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쪼들리는 살림속에서도 나를 위해 저축을 하고 계셨고, 신념을 꿋꿋이 지키며 살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내 꿈을 찾아 떠난다고 큰 소리 쳤지만, 나는 내 신념을 꿋꿋이 지키며 살고 있는가? 방에 놓여있는 가전제품은 결국 말 없는 생물이 아니다. 내 방을 비추는 전등을 새로 끼운 것 만으로도 고객은 새로운 삶을 찾은것 같은 기분을 갖는다. 귀가 들리지 않아 며느리의 말을 못 듣던 할머니는 보청기를 끼고 10년만에 새소리를 듣게 되었고,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다. 결국 내 꿈을 향해 달리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도 아니다. 그리고 내가 더 열심히 내 꿈을 향해 달릴 때 다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을 던져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레이는 사표를 냈던 회사에 복직을 하게 되고, 다시 꿈을 향해 힘차게 뛰기 시작하다. 아버지 덕분에 레이의 마음에는 행복의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야스다 마나 감독의 <행복의 스위치>는 잔잔하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마음에는 행복의 스위치가 켜져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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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지현 2008/12/27 00:18

    고심끝에 5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는 저로선 눈에 들어오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갑자기 달라진 일과에 대한 혼란 탓인지 조금은 패배주의자가 된 듯 한 기분에 우울했었는데 생각을 좀 바꿔보니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얻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으면 얻는 것이 있는...

    돈을 벌 수 있었던 시절에는 돈이 넉넉했지만, 자신과의 시간과 가족과의 행복은 부족했었고, 지금은 돈은 부족할지라도 가족안에서의 정신적인 행복과 평화가 충만해질 수 있으니까요.

    모든 일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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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ue 2008/12/28 12:12

      바쁜 일상을 보내다보면 잃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음에도 너무나 많은 불평속에 살고 있고, 정신적인 행복과 평화는 안중에도 없지요~ <행복의 스위치>가 그런 부분을 잔잔하게 일깨워준것 같습니다.
      부디, 행복한 직장, 행복한 시간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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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터(The Visitor, 2007)라는 영화는 줄거리를 놓고 보면 9.11 이후 미국내의 노골적이고 편향적인 이민정책에 대한 조롱섞인 영화이다.

한 노교수가 우연히 만난 불법체류자 커플과 얽히게 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차게 되지만 결국 미국의 노골적이고 편향적인 이민정책으로 변화를 겪게 된다는 간단한 줄거리이다.

The Visitor,2007
톰 매카시 감독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퍼즐조각 같은 작은 소재들을 이용하여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드는 묘한 재주를 가진 감독이다. <스테이션 에이전트>에서는 폐쇄된 시골 작은 역으로 온 왜소증 환자인 주인공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친구'의 의미를 깨달게 되는 과정을 감동 깊게 그려냈다.

는 <비지터>가 <스테이션 에이전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관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비지터>에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소극적이고 일상의 관계에 묻혀 있던 있던 월터교수가, 아무 관계도 없는 불법체류자 커플과 함께 살면서 아프리카 악기 점베를 배우게 되고 차츰 주변의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삶의 열정에 눈 떠가는 모습이 <스테이션 에이전트>와 닮은 꼴이다.

아내도 잃고, 취미로 배우는 피아노는 늘지 않고, 대학에서의 무료하기 그지 없는 하루가 계속되고, 익숙한 일상에 젖여 있던 월터는 그 일상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대학교수인 월터는 강의를 하지만 그 모습은 반복적이고 무료하게 그려진다. 누구나 그렇다. 직장생활은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반복되는 일상이다.

월터에게 무료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돌파구는 어이없게도 공동저술한 논문의 발표를 위해 뉴욕을 찾으면서 일어난다. 공동저자지만 자신은 이름밖에 올린게 없다고 극구 뉴욕가기를 꺼려하던 월터는 마음에는 내키지 않지만 뉴욕으로 떠난다. 오랜만에 찾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뜻하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타렉과 자이납을 만나게 되고 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묘한 동거속에서 타렉에게 점베를 배우고 공원에서 공연을 하고 차츰 젖은 일상속에서 벗어나고 있던 찰나에 타렉이 지하철에서 연행되고 월터는 타렉을 빼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타렉은 추방된다. 영화의 끝 말미에 월터는 지하철 역에서 점베를 연주한다. 타렉과 지하철역에서 얼후를 연주하는 중국인을 보며 이야기했던 내용이다.

비록 자신에게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 준 타렉과의 만남은 타렉의 추방으로 끝이 났지만 월터는 점베를 연주하며 타렉을 기억하고, 새로운 열정을 얻는다. 무료함과 반복되는 일상에 젖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월터처럼(뜻하지는 않았지만)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다른 사람과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이든 새로운 취미를 가지는 방법이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되도록이면 일상에서 벗어나는 돌파구를 찾을 필요성이 있다. 돌파구는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고 삶의 열정에 불을 당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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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이하쿠 2008/10/25 00:48

    ㅋㅋㅋ 반갑습니다. 근데 트랙백이 않되는데 한번 봐 주실래요? 주말 잘 보내 세요^^ 세이하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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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자신을 조여올 때 취해야 할 행동


현실이 자신을 시도때도 없이 조여온다. 새로운 기회라고 믿었던 기회(영화에서는 크리스 가드너가 팔러다니는 의료기)는 오히려 칼이 되어 자신의 목을 조이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몰려오는 세금과 각종 고지서들은 크리스를 더욱더 지치게 한다. 크리스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주식중개인과 눈 농담 사이로 크리스의 독백이 흐른다.
아직도 그 광경이 기억난다.
그들은 모두 정말,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왜 내가 그렇게 될 순 없을까?
숫자에 민감하고, 인간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는 크리스는 주식중개인 인턴에 지원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인턴에 합격할 수 있도록 그의 능력을 보여준다. 그는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주식중개인이 될만한 어떤 좋은 경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빠른 두뇌회전과 성실함이다. 제이와 택시를 같이 타서 보여주는 큐브 맞추는 장면은 어떻게든 인턴에 합격하여 현실을 헤쳐나가고 싶은 크리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다.

제이와 함께 탄 택시에서 큐브를 맞추는 크리스

<큐브>는 현실을 헤쳐나가고 싶은 크리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현실이 자꾸만 조여오고, 앞이 보이지 않을때, 그리고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보일때...크리스 같은 적극성(요즘말로 들이댐? 정도)이 필요한 것 같다. 서류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일천하지만, 행동이나 이야기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하기 나름이다.
현실이 자꾸만 조여올 때 취해야 할 행동은 크리스 같은 적극성이다.

기회를 잡는 방법

인턴이 된 크리스는 크리스토퍼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빨리 일을 끝내기 위해 수화기를 놓지 않고 전화를 해야 하며, 물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월급이 없는 인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의료기를 팔아서 6개월동안은 생계를 이어야 한다.

영화에서 나오지만 크리스는 의료기를 몇 번 잃어버린다. 주식중개인 인턴에 지원하기 위해 히피에게 맡긴 의료기를 도둑맞기도 하고, 택시비를 내지 않고 도망치면서 힘겹게 탄 지하철에서 의료기를 놓치기도 한다. 결국 의료기를 돌려받고 그 의료기를 통해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복잡한 심정인 크리스에게 의료기는 마지막 생계수단이다. 그래서 공원에 앉아있을때도, 복잡한 시내를 걸으면서도 의료기가 눈에 보인다. 의료기를 되찾기 위해 쫒아가다가 차에 치기도 한다.

크리스에게 기회는 엉뚱하게 찾아온다. 우연히 라빈에게 전화를 걸게되고, 시간이 남는다며 찾아오라는 라빈에게 열심히 찾아가지만 길이 엇갈리고 만다. 하지만, 크리스는 주말에 라빈의 집에 찾아가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과를 한다.

라빈은 크리스에게 미식축구를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을 하고 크리스는 함께 동행한다. 이곳에서 크리스는 라빈 외에 다른 고객들을 만나게 되고, 결국 영화 후반부에 그 고객들을 통해 계약을 성사시키게 된다.

영화 내용상으로 흘려버리기 쉬운 장면이지만,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적극적이어야 하며, 인관관계에 소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인것 같다. 자신이 목표로 했던 고객은 잡지 못했지만, 그 고객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창출해내는 장면은 기회는 다른 곳에서 생길 수 있으며, 적극적이고 부드러운 인관관계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 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행복을 찾아서

행복을 찾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현실이 자신을 시시각각으로 조여올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크리스는 이야기 한다. 좀더 낙관적으로, 적극적으로,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말 것.
바로 이 때 난 토머스 제퍼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작성한 독립선언문에 적힌 우리의 권리,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권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
그리고 나는 계속 생각하기를, 어떻게 그가 추구에 관한 부분을 집어넣게 되었을까?
어쩌면 행복이란 오직 추구할 수만 있는 것, 그리고 평생, 무슨 일을 하던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어찌 알았을까?
현실에 눌려 행복은 오직 추구할 수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크리스는 결국 행복을 찾고 말았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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