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게 파고드는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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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 Path – Juspot
근래 페이스북에 타임라인이 도입되면서 개인정보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 개인이 어느 날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있엇는지, 언제 태어났는지 개인정보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페이스북에서는 개인정보의 공개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 하지만 타임라인이 도입되면서 기본적으로 나이, 지역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미국 같이 땅덩이가 넓은 곳이라면 몰라도 국민의 대부분, 그것도 직장과 삶을 위해서 서울로 몰려드는 국민이 많은 한국에서 지역과 나이만으로도 이미 많은 정보가 제공되는 것이다.

Path – 완전히 개인화된 Day history식 SNS
이런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path(https://path.com)라는 SNS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Path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한 개인의 Day history(하루 역사 : 역사학이나 문화인류학에서는 생애사 즉 Life history가 있는데 이 용어를 path에 대입하여 만들어 낸 용어이다.), 미국식 싸이월드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물론 Path에서는 싸이월드에서 제공하는 학교를 통해서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추천하는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전자우편 주소나 휴대전화 번호로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추천한다.)

path의 페이지는 친구가 아니면 누구도 볼 수 없으며, path 홈페이지를 보면 알겠지만, 완전히 모바일화된 서비스이다. 처음에 path홈페이지를 보고 적쟎이 당황하였다. 홈페이지에서 여러가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facebook과 twitter에 벌써 익숙해진 것일까? path의 사용장면을 보여주는 동영상과 스마트폰 앱을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를 빼놓고는 깔끔하다.

path는 IOS와 Andriod용 앱을 제공한다. 앱을 다운받아 설치하면 간단하게 가입절차를 마무리 할 수 있다. 또한 path에서는 facebook과 twitter에 글을 보내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첫 화면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일단 facebook 타임라인에서 제공하는 표지사진을 설정하고 자신의 사진을 설정하면 거의 설정은 끝난다. 왼쪽 하단에 위치한 +표시를 누르면 path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알 수 있다. 사진, 위치, 음악, 글쓰기등 기존의 SNS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기능은 모두 제공한다. 그러나, 친구로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전혀 내용을 볼 수 없다. 또한 다른 SNS에서는 없는 재미있는 기능이라면 자고, 일어난 시간까지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 기능 때문에 day history라는 말을 썼다.)

path 모바일앱 화면
path 모바일앱 화면

만약 path에서 쓴 내용을 facebook, twitter와 연동하지 않는다면 나만의 일기를 조용히 쓸 수 있는 여건도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path는 어떻게 수익구조를 가져갈지 궁금해진다. 이건 순전히 나의 생각이지만 path는 LA(Local AD)와 path간 이루어진 친구사이의 관심사를 데이터마이닝을 통해 의미있는 자료로 뽑아내고, 이것을 이용한 광고로 수익구조를 가져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친구간 나누는 대화를 통해 관심사를 포착할 수 있고, 글이나 사진을 통해 위치정보와 관심사에 관련된 정보를 뽑아낼 수 있으므로 충분히 LA(Local AD)나 관심사를 중심으로 한 광고를 할 수 있다. 내가 광화문에 있다면 주위 식당이나 내가 관심있어 하는 물품을 파는 가게에 대한 광고가 나올 것이다.

한국도 되지지 않아! – Juspot
한국도 뒤지지 않는다. Juspot은 테터&컴퍼니의 노정석 대표님께서 설립한 ABLAR Company에서 야심차게 런칭한 서비스이다. 다른 SNS서비스와 다른 점은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꼭 사진을 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 외에는 위치정보, follow, followers 기능, 지역별로 올라온 글 보기 기능, 메시지 기능이 제공된다. path와 비슷하게 모바일 앱으로만 제공되고 모바일에서 찍은 사진을 여러가지 사진필터를 통해 꾸밀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금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음식, 셀카, 생각 등)을 사진을 통해 마음껏 올릴 수 있다. 다만, 꼭!! 사진이 올라가야 한다. 가입도 너무 쉽다. facebook이나 twitter 계정만 있다면 바로 가입할 수 있다.

Juspot에서 글올리기
Juspot에서 글올리기

휴대전화의 성능이 좋아짐에 따라 사진을 찍고 서로 공유하는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런 일들을 Juspot은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만 path와 틀린점은 완전한 개인화는 아니다. 사진을 올리는 순간 follow든 followers가 아니든 모두가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다른 사람 옆구리 찌르는 것과 같다. 나도 하고 싶다. 나도 저기 가볼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관심(♡표시)을 표시할 수 있고, 누구나 댓글을 남길 수 있다.

현재 Juspot을 올릴 수 있는 지역은 서울에서 5개 지역이다.(강남, 가로수길, 홍대, 신촌이대, 대학로) 이 지역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고, 그 만큼 맛있는 음식점, 원하는 아이템의 트렌드가 빨리 바뀌고, 급속이 퍼지는 지역이다.

이 지역을 정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을 찍고, 사진을 공유하는데 익숙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관심사나 아이템, 맛집 데이터를 뽑아 지역에 맞게 모바일 광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지역 5개 지역을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젊은 사람들은 빨리 받아들이고, 그것이 쉽게 유통된다. 고로 광고를 통해 효과를 금방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해당 지역에 있는 사용자에게 그 지역의 Wish아이템이나 맛집 광고를 노출 시키면 일상적인 모바일 광고보다는 효과가 틀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개인화 개인화
SNS는 자꾸 개인화 되고 있다. 일기처럼 하루 전체를 공유할 수 있는 path나 사진을 통해 일상을 쉽게 공유하는 Juspot은 개인이 중심이다. 앞으로도 개인화는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개인화를 통해 사용자에게 더욱더 편리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개인정보가 여러 곳에 많이 풀린다는 것은 썩 유쾌한 현상은 아닌듯 하다.

우리나라는 IT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것은 도사지만, 보안에는 정말 관심이 없다. 1년에 1~2번씩은 해킹사건이 터지고, 보이스피싱 전화기에 욕을 퍼부었더니, 집으로 피자 20판을 보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은 웃음이 나오면서도 씁쓸하기까지 하다.
갈수록 개인에게 파고다는 SNS가 소소한 일상을 공유함으로써 즐거움은 주겠지만, 그 즐거움은 개인 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해주고, 자신의 개인정보 처럼 관리해주는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때 즐거움으로 남을 것이다.

신은 공평하다 – 신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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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보고 싶은 영화였지만, 못 보고 있었다.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일단 장면 장면이 조용하고, 선문답이 오고가는 대화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고 감상하면 영화를 본 것도 안 본것도 아니다.
영화 얘기에 앞서, 나의 종교는 가톨릭(천주교)이다. 고로, 다른 사람보다는 영화에서 나오는 종교적 의식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가톨릭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인간’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았다.

* 이 글에는 <신과 인간> 의 줄거리가 약간 포함되어 있음.

이방인. 하지만 이웃이자 친구
영화의 배경은 알제리에 위치한 봉쇄수도원(가톨릭의 수도회는 여러 소명을 가지고 활동한다. 교육에서 자선활동, 출판까지 각 수도회마다 소명이 있다. 그러나 봉쇄수도원은 금욕과 기도를 통해 예수의 구원할동에 동참하며, 수도원 안에서만 생활한다.)이다. 수사(가톨릭에서는 여자 수도자들을 수녀, 남자 수도자들을 수사라고 한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미사를 드릴 때 목에 보라색 스카프 같은 것을 두른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수도회에 소속된 수사신부들이고, 나머지는 수사들이다. 영화에서는 3명의 수사신부가 등장한다.)들은 프랑스 수사들로 알제리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함께 했기 때문에 생김새, 종교와 관습이 틀리기는 하지만 이미 그들은 이웃이자 친구이다.

수도원이 있는 마을은 외진곳이고 교통편도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원에서는 의사(루크)가 주민들을 간단하게 진료해준다. 영화에서는 어느 일상과 같은 평화로운 생활을 한동안 보여준다.

주민들을 진료하고, 글을 모르는 주민이 정확하게 약을 먹을 수 있도록 그림으로 약 먹는 시간을 알려주고, 외국에 있는 자식에게 보낼 편지를 대필해주는 장면 등 수도원의 일상을 조용히 보여준다. 수사들은 성무일도(수도자들이 매 시간 마다 드리는 기도, 가톨릭에서는 수도자 뿐 아니라 피정중인 신자들도 매 시간 마다 이 기도를 할 것을 권하고 있다.)와 미사, 주민들과 함께 지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인간의 문제

<신과 인간> 포스터
<신과 인간> 포스터
이 평화로운 마을, 그리고 수사들에게 문제가 일어난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내전이 벌어지면서 부터이다. 자신들에게는 별 일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수사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외국인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인간적 고뇌에 앞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자신의 지난날과 가족과 인생에 대한 물음이 수사들에게 던져진다.

아마도 수사들은 이렇게 고뇌했을 것이다. 내가 어딘지도 모르는 외진 수도원에서 죽어도 될까? 과연 이것이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인가? 과연 내가 이렇게 살자고 지금 여기에 있는가? 등등
고뇌에 몸부림치는 수사들의 모습을 보면 “삶”에 대한 고뇌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그 고뇌를 가지는 사람의 직업이 수도자라도)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내전 사태가 갈수록 깊어지자 수사들은 마을의 지도자(아마도 이장이나,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르신 정도 될 것이다)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언제든 떠날 수 있습니다. 마치 새가 나뭇가지 위헤서 어디로든 날아가듯이요.
당신들은 새가 아니라 나뭇가지이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들은 수사들은 아무말도 못한다. 나는 영화에서 이 장면이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적인 고뇌, 차별, 정치적인 이해관계 등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의 문제인것이다. 신은(이슬람의 마호메트이든 예수이든, 석가이든) 인간에게 차별하고,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반목하라고 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은 고스란히 인간의 문제인것이다.

과연, 어떤 종교가 서로 반목하고 차별하며, 서로 죽이고 쫒아내라고 가르치겠는가?
우리도 마찬가지다. 많은 문제들로 고민하고 반목한다. 어떤 이유를 들어서 차별하기도 한다. 우리 생활속에서 반목과 차별을 밥 먹듯이 하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반성하지도 않는다.

차별은 그들이 나보다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고, 환경이나 능력이 안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을차별이라고 생각한다고 내심 마음에 두지 않았는가? 아니, 차별의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있을 지언정 나에게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반목은 나를 지키고 내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했거나, 그런 일을 ‘반목’ 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눔의 삶을 살고, 예수의 모습으로 살고 싶어하는 수사들도 주위에서 나돌던 반목과 차별이 자신들에게 총구를 들이밀자 인간으로 돌아간다. 그들도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들은 서로를 부둥겨 안고 서로가 서로를 기도하며 수도원에 남기로 한다. 결국 수사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붙잡혀 가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결코 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의 문제로 고뇌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별과 반목으로 인해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은 인간인 자신들이 만들어낸 문제였다는 사실을 수사들은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수도원을 떠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도 우리가 만들어낸 문제를 가지고 고뇌하고 괴로워하지 않는가? 때로는 그 문제들로 신을 원망하지는 않는가? 결국은 자신이 만들어낸 문제이다. 신은 당신에게 그런 문제를 던져준적이 없다. 신은 공평하다. 그리고 공평함을 우리에게 가르쳤다.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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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중 작가 최인호의 “인호야 나오너라” 중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습니다.
과거는 주님의 자비에 맡기고, 현재는 주님의 사랑에 맡기고, 내일은 주님의 섭리에 맡겨라 

나는 사랑속에서 주님의 섭리를 느끼며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