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조사기(1) – 나는 원래 중쇠였어~!

令(령)이 적힌 깃발을 앞세우고 괭과리가 가락을 튼다. 연동마을의 대보름 제사의 시작을 알리는 괭과리 소리에 맞춰, 장고와 북, 소고가 장단을 마추기 시작한다. 이미 제관들은 옷을 갖춰입었고, 제물은 마을 뒷편 당산나무로 향한다. 마을주민들도, 농악장단에 맞춰 당산나무로 향한다.

영광읍 연성리 연동마을은 영광읍을 들어가는 마지막 고개밑에 위치한 마을이다. 처음오는 사람은 찾기 힘들게 고개 밑에 빼꼼이 자리한 마을은 들어가는 길은 좁지만 들어가면 제법 큰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마을은 보름전날 즉 음력 1월 14일 낮에 제사를 지낸다. 먼저 장단으로 제사를 알리고, 장단을 치면서 처음 제사를 지내는 당산나무로 향하고, 마을주민들도 그 뒤를 따른다.


당산나무에 도착하면, 준비해온 돼지머리, 나물, 과일들, 대추와 밤을 제사상으로 마련한 상석에 올린다. 유교식 한복을 입은 제관들이 제사상을 다 차리자, 첫 술을 올린다. 유세차~~!! 모년 모월로 시작하는 축문을 읽고, 3명의 제관이 돌아가며 절을 하며 술을 올린다. 그때마다 농악은 장단으로 제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린다. 보통 제사를 지낼때는 장단을 치지 않지만, 이 마을에서는 장단을 쳐서 제사를 이끈다. 제사가 끝나자 바쁘게 상을 치우고, 마을회관 앞 당산나무로 옮긴다. 이 마을에서는 2개의 당산과 마을입구의 미륵님께 제사를 지낸다. 바삐 제사상을 치우고, 제물은 트럭에 실어 당산제를 치를 곳으로 보내고, 장단을 치는 농악대를 따라 다음 제사지낼 곳으로 향한다.

뿔뿔히 흩어지듯이, 그렇지만 바삐 다음 제사지낼 마을회관 앞 당산나무에 도착한 제관들은 다시 상석에 제사상을 차린다. 제사순서는 앞과 같이 3명의 제관이 돌아가며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다. 제사가 끝나고 다시 상을 치운다음에 마을입구에 서 있는 미륵님에게 간다. 사실 둥굴넙적한 돌을 이고 있는 미륵님이라는 돌은 뭔가 모양을 갖춘것 같지만, 사실 머리겠다 싶은 곳만 알아볼뿐 어떠한 장식이나 조각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멀리서 보면 모자를 쓰고 서 있는 어린애 갔다. 미륵님 앞 상석에 제사상을 다시 차리고 3명의 제관이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다. 이제 서서히 제사가 끝나간다. 미륵님 앞에서의 제사도 끝나고, 이제 마무리를 짓는가 보다 하는데, 땅 밟아주러 간다고 한다. 보통 대보름에는 지신밟기라고 하여, 농악대가 마을을 돌며 땅을 밟아주고, 집안에 액운들을 쫓아내 준다. 트럭에 농악대며, 제관들이 나눠타고 땅밟기를 요청한 집으로 향한다.

땅밟기를 요청한 집에 도착하자, 令이 적힌 깃발을 턱하니 마당에 꽂는다. 그리고 마당을 돌며, 장단을 친다. 원래 집안에서 장단을 칠 경우, 부엌과, 우물에서 장단을 치지만 우물이 없기때문에 부엌에 들어가 땅을 밟아준다. 주인은 농악대를 친절하게 맞이하고 정성껏 모신다. 땅밟기가 끝나자, 주인이 약간의 술과 음식을 내온다. 제관이 마당에 꽂았던 令기를 가져와 깃발끝에 술을 약간 뿌린다.

“어르신 장단 참 잘 치시네요”
“어~~!! 무슨~~!!”
“나는 원래 중쇠였어~!, 상쇠하던 양반도 먼저가고, 우리 마을이 원래 굿을 잘 쳤었는디 다 돌아가시고, 이제 나만 남았네~!!”

땅밟기가 끝나고, 마을회관에 모여, 마을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광지역에서는 대보름때 줄을 꼬고 줄다리기를 하는데, 연동마을에서는 77년까지 줄다리기를 하고 그 이후에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함께 조사를 간 선생님 왈

“저 어르신 장단을 참 신나게 치시네” 하신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농악대가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1등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이신 어르신만 홀로 남아 오늘 장단을 맡으셨다.

어르신은 “내가 더 신나게 치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못 따라온께….” 하고 말끝을 흐린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마을에는 나이드신 촌로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나마 근근히 이어오던 줄다리기와 제사도 마을에 사람이 없어 끊긴곳도 많다. 연동마을은 그래도 지금까지 이어져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