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와 보물을 찾아서 (2일째)

밤새 내린 눈들이 온통 하얀 세상을 만들어버렸다. 괜시리 오늘의 일정이 걱정되지만, 비오는것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채비를 한다. 얼마나 추웠는지 버스도 꽁꽁얼어 히터도 틀어지지 않는다. 바람을 막아주는것만 해도 다행이지만 버스안도 영하의 추위다. 몇십분쯤 달렸을까? 고달사지에 도착했다. 고달사지는 고달이라는 석공이 자신의 불심으로 지은 사찰인데, 사찰을 짓는 동안 자신의 가족들이 모두 죽은 줄도 모르고, 나중에 사찰을 지은후에 가족들이 죽은 사실을 알고, 승려가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고달사지에는 남아있는 건물은 없고, 석불대좌와 조각이 멋있는 귀부와 이수, 부도가 남아있다.

사지는 널찍하여 고달사지가 한때 대사찰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원종대사혜진탑은 탑비는 경복궁에 있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다. 이수의 화려한 조각이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 같다.

부도는 산록으로 약간만 올라가면 있다. 거대한 부도가 마치 지리산자락에 위치한 사찰들(태안사, 연곡사등)에 있는 부도를 보는 느낌을 주지만 조각의 멋은 그 부도들만 못한것 같다.

눈밭을 헤치며 이리저리 사지를 살펴보고, 다음 답사지인 서울로 향한다. 서울은 오랫동안 우리의 수도였던 만큼 어디를 가도 역사적인 볼거리가 많다. 길하나 골목하나에 우리가 살았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대도시로 커가면서 그런 흔적들이 조금씩 없어지고, 이제는 그 자리를 “X가 있었던 곳” 이라는 초라한 비만 지키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도시의 성장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과 함께 보호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서울에 도착하였다. 첫 답사지로 흥인지문으로 향한다. 흥인지문과 숭례문은 버스에서 살펴볼 수 밖에 없었다. 차들이 지나다니는 차도라 내려가 볼 수없기 때문이다.

흥인지문은 한양의 동쪽 대문이다. 유일하게 옹성을 갖춘 문이다. 옹성은 성문을 둘러싸 멀리서 봤을때 성문을 찾지못하게 하고 수비의 효율을 살린 구조물이다. 한양도성에는 8개의 문이 있었는데, 그 중에 흥인지문에만 옹성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숭례문이나 흥인지문 얘기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북쪽 대문 숙정문(홍지문) 얘기이다. 북쪽대문은 홍지문 또는 숙정문으로 불렸는데, 도성을 건립하고 얼마 안 있어 풍수지리상 닫아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 닫아두었다고 한다. 또한 북쪽 대문을 열어놓으면 도성의 아녀자들이 바람이 난다고 해서 닫아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도 군사시설상 북쪽 대문은 닫아져있으니, 북쪽 대문의 운명은 닫힘인가보다.

흥인지문을 살펴보고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탑골공원에는 원각사지10층 석탑이 있다. 원래 원각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연산군에 의해 없어지고, 기생집으로 쓰였다고 한다. 원각사지 10층석탑은 그 화려함이 조선시대 여느 탑과는 다른데, 탑신부에 새겨진 사천왕이며 불상들이 그 화려함을 더해주었다.

탑골공원의 입구에는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새워져있다. 독립선언을 기념하는 부조도 세워져있다. 탑골공원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광장기능을 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았다.

도시에서 광장은 군중들이 휴식처이자, 권력자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정치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탑골공원은 이런 측면에서 서울의 정치적, 오락적 측면을 함께 갖고 있다.

탑골 공원을 나와 경복궁의 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나도 중앙박물관은 처음가보지만 시간상 몇 개 유물만 살펴보고 나와야 할것 같다. 현재 중앙박물관은 임시로 경복궁에 있다. 용산에 새 박물관을 짓고 있는데, 그래도 박물관에 볼 것이 많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유물들이 모두 전국의 이름있는 사찰이나 유적지에서 가져다 전시한 것이라 약간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영국이 제국주의 침략을 행하면서, 이집트나 다른 다라들의 문화유산을 약탈하여 그 유명한 대영박물관을 세운것 같이, 중앙박물관도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문화재는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빛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화려한 조명과 많은 사람의 눈보다는 자신이 오랫동안 숨쉬어왔던 그 공기와 그 햇살속에서 빛을 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중앙박물관을 돌아보고 마지막 코스 숭례문으로 향했다. 한국을 상징하는 숭례문은 한양의 남쪽 대문이다. 높이 솟아있는 남대문은 오랫동안 조선의 문이요, 한국의 문이었다. 지금은 문 주위로 많은 차들이 통행하고 있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조선의 큰 대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대문을 드나들었던 많은 사람들을 내려다봤을 것이다. 마치 달관에 경지에 이른 스님처럼 묵묵히 한국의 문을 자처하며 지키고 서 있는 남대문이 이때처럼 포근하게 보인적은 없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