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공평하다 – 신과 인간

오래전부터 보고 싶은 영화였지만, 못 보고 있었다.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일단 장면 장면이 조용하고, 선문답이 오고가는 대화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고 감상하면 영화를 본 것도 안 본것도 아니다.
영화 얘기에 앞서, 나의 종교는 가톨릭(천주교)이다. 고로, 다른 사람보다는 영화에서 나오는 종교적 의식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가톨릭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인간’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았다.

* 이 글에는 <신과 인간> 의 줄거리가 약간 포함되어 있음.

이방인. 하지만 이웃이자 친구
영화의 배경은 알제리에 위치한 봉쇄수도원(가톨릭의 수도회는 여러 소명을 가지고 활동한다. 교육에서 자선활동, 출판까지 각 수도회마다 소명이 있다. 그러나 봉쇄수도원은 금욕과 기도를 통해 예수의 구원할동에 동참하며, 수도원 안에서만 생활한다.)이다. 수사(가톨릭에서는 여자 수도자들을 수녀, 남자 수도자들을 수사라고 한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미사를 드릴 때 목에 보라색 스카프 같은 것을 두른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수도회에 소속된 수사신부들이고, 나머지는 수사들이다. 영화에서는 3명의 수사신부가 등장한다.)들은 프랑스 수사들로 알제리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함께 했기 때문에 생김새, 종교와 관습이 틀리기는 하지만 이미 그들은 이웃이자 친구이다.

수도원이 있는 마을은 외진곳이고 교통편도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원에서는 의사(루크)가 주민들을 간단하게 진료해준다. 영화에서는 어느 일상과 같은 평화로운 생활을 한동안 보여준다.

주민들을 진료하고, 글을 모르는 주민이 정확하게 약을 먹을 수 있도록 그림으로 약 먹는 시간을 알려주고, 외국에 있는 자식에게 보낼 편지를 대필해주는 장면 등 수도원의 일상을 조용히 보여준다. 수사들은 성무일도(수도자들이 매 시간 마다 드리는 기도, 가톨릭에서는 수도자 뿐 아니라 피정중인 신자들도 매 시간 마다 이 기도를 할 것을 권하고 있다.)와 미사, 주민들과 함께 지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인간의 문제

<신과 인간> 포스터
<신과 인간> 포스터
이 평화로운 마을, 그리고 수사들에게 문제가 일어난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내전이 벌어지면서 부터이다. 자신들에게는 별 일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수사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외국인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인간적 고뇌에 앞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자신의 지난날과 가족과 인생에 대한 물음이 수사들에게 던져진다.

아마도 수사들은 이렇게 고뇌했을 것이다. 내가 어딘지도 모르는 외진 수도원에서 죽어도 될까? 과연 이것이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인가? 과연 내가 이렇게 살자고 지금 여기에 있는가? 등등
고뇌에 몸부림치는 수사들의 모습을 보면 “삶”에 대한 고뇌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그 고뇌를 가지는 사람의 직업이 수도자라도)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내전 사태가 갈수록 깊어지자 수사들은 마을의 지도자(아마도 이장이나,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르신 정도 될 것이다)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언제든 떠날 수 있습니다. 마치 새가 나뭇가지 위헤서 어디로든 날아가듯이요.
당신들은 새가 아니라 나뭇가지이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들은 수사들은 아무말도 못한다. 나는 영화에서 이 장면이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적인 고뇌, 차별, 정치적인 이해관계 등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의 문제인것이다. 신은(이슬람의 마호메트이든 예수이든, 석가이든) 인간에게 차별하고,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반목하라고 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은 고스란히 인간의 문제인것이다.

과연, 어떤 종교가 서로 반목하고 차별하며, 서로 죽이고 쫒아내라고 가르치겠는가?
우리도 마찬가지다. 많은 문제들로 고민하고 반목한다. 어떤 이유를 들어서 차별하기도 한다. 우리 생활속에서 반목과 차별을 밥 먹듯이 하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반성하지도 않는다.

차별은 그들이 나보다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고, 환경이나 능력이 안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을차별이라고 생각한다고 내심 마음에 두지 않았는가? 아니, 차별의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있을 지언정 나에게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반목은 나를 지키고 내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했거나, 그런 일을 ‘반목’ 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눔의 삶을 살고, 예수의 모습으로 살고 싶어하는 수사들도 주위에서 나돌던 반목과 차별이 자신들에게 총구를 들이밀자 인간으로 돌아간다. 그들도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들은 서로를 부둥겨 안고 서로가 서로를 기도하며 수도원에 남기로 한다. 결국 수사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붙잡혀 가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결코 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의 문제로 고뇌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별과 반목으로 인해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은 인간인 자신들이 만들어낸 문제였다는 사실을 수사들은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수도원을 떠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도 우리가 만들어낸 문제를 가지고 고뇌하고 괴로워하지 않는가? 때로는 그 문제들로 신을 원망하지는 않는가? 결국은 자신이 만들어낸 문제이다. 신은 당신에게 그런 문제를 던져준적이 없다. 신은 공평하다. 그리고 공평함을 우리에게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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