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흑산’을 만나다

설 연휴를 보내기 위해 부모님이 계시는 목포에 다녀왔다. 목포는 변함이 없었다. 긴 연휴를 보내고 목포를 떠나기 위해 목포터미널에 도착했다. 연휴가 끝났음에도 터미널은 북적거렸다. 출발하기전까지 1시간여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까 궁리를 하다가 터미널 한켠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서점으로 들어갔다. 여러 책들 중 김훈의 ‘흑산’이 눈에 띄었다. 조그맣고 두툼한 책 한권이 눈에 쏙 들어왔다. 책을 사들고 첫 장을 펴들었다.

……저것이 바다로구나, 저 막막한 것이, 저 디딜 수 없는 것이….. -김훈, <흑산> 11p 선비 –

김훈 <흑산>
김훈 <흑산>

목포 터미널 대합실에서 읽기 시작한 ‘흑산’은 책을 덮지 못하게 나를 잡아 끌었다. 흑산도로 유배가는 정약전의 모습을 전라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그래서 망망한 바다를 건너야 하는 ‘흑산’에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사실 역사를 공부하며, 유배란 형벌은 깊이 다가오지 않았다. 죄인을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 그저 이론일 뿐이었다. 그러나 ‘흑산’에서는 유배라는 형벌이 정약전의 심정과 주위 등장인물들의 걸출한 사투리로 뺃어지고 있었다.

‘흑산’과 천주교
‘흑산’은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와 그들의 조카 사위 황사영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이루는 큰 줄기는 흑산도로 유배가는 정약전과 황사영이다. 정약전은 사학죄인(邪學罪人)이 되어 흑산도로 유배를 간다. 소설을 읽으면서 왜 작가가 천주교 이야기를 택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마노리를 소개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약간이나마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지만, 마노리에게는 그 뜻이 분명하고 손에 잡힐 듯이 확실했다. 마노리는 그 분명함에 놀랐다. 황사영의 말을 듣기 전부터 마노리는 그 말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알고 있었지만, 그 앎이 드러나지 않고 몸 속 깊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은 목마른 자가 저절로 물을 찾고,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저절로 솟아나서 사람이 사람을 찾아가는 것처럼 분명했다. 마노리는 그것을, 자신도 모르는 중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
– 김훈, <흑산> 174p 마부 –

물론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유추한 것이지만, 작가는 요즈음 화두가 되고 있는 ‘정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부패, 권력, 공정함,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낭자한 이때에 작가는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는 황사영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의는 천주교(꼭 천주교가 아니더라도 나쁜 짓을 하라고 시키는 종교는 없다. 사실 종교를 넘어서서 보통사람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도덕에 대한 이야기가 더 나은 묘사일지 모르겠다) 교리를 처음 들은 마노리가 느꼈듯이 처음 들어보는 것임에도 분명하고, 느껴본적은 없지만 듣고 보니 마음속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소설의 여러 부분에서 보인다. 마노리가 천주교 교리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소설 곳곳에서 다시 묘사되고 있으며, 천주교를 탄압하는 조선 조정의 행태(대비의 자교와 신하들의 태도)와 지방관리들의 행태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스며있다.

‘흑산’ 우리 시대에 필요한 생각들

과연 우리 사회에 ‘정의’란 무엇인가?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는 흑산도와 천주교 탄압을 모티브로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흑산을 천주교를 전례하다 순교했던 조상들의 이야기, 종교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말고 위의 시각으로 읽길 권한다.

저 멀리 바다에 홀로 떨어져 있는 흑산에서도 지방관리는 여러 목의 세금을 만들어 백성들의 등골을 뽑아 먹는다. 조정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자꾸만 백성을 통제하고 소통하지 않는다. 관리들은 타성에 물들어 적극적으로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맥과 돈으로 줄 대기에 급급하고, 윗선에 잘 보이기에 급급하다. 힘 없고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양반들은 반반한 아랫것들 겁탈하기에 급급하고, 그나마 먹고 살기 위해 뛰어다니는 남정네들은 조정이 부과한 부역만으로도 등골이 빠질 것 같은 고단한 삶이다. 그런데 천주교의 교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하다. 교리를 들어보니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고 당연한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가슴에 편안함이 찾아온다.

우리도 아래의 ‘기도’를 외우며 이 힘든 현실을 살고 있고, 더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음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김훈, <흑산> 105p 육손이 –

2 thoughts on “흑산

    1. 저도 ‘흑산’을 읽으면서 저 기도문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제가 쓴대로 정말 보통사람인 우리들은 모두 저 기도문을 가슴에 품고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는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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