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의 제주 올레길(1)

올레길을 다녀온지 벌써 한달이 넘었다. 기대했던 만큼 이번 올레길에서도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했다. 이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지고 행복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레길을 다녀온 후 현실은 쌓인 업무와 복잡한 생각의 연속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초가을 제주 올레길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다시 걷고 싶은 길
여름 휴가를 이용해 다녀온 올레길이 못내 잊혀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올레길을 찾을 것을 결심하고 달력을 보니 개천절 연휴가 눈에 띄었다. 항공권을 검색해보니 이미 10월 1일부터 3일사이는 만석. 결국 10월 2일~4일까지 일정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10월 2일~4일은 좌석의 여유가 있다.
항공권을 예매하고 이번에 걸을 코스를 더듬어본다. 여름휴가 때 걸었던 시원한 바다가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바다향기가 고스란히 올라오는 점심과 저녁식사를 하고 싶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와 바람을 맞고 싶다. 제주 올레길 8코스~10코스는 이런 나의 마음을 반영하여 이번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다.

10월 2일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역시나 전날밤 잠이 오지 않는다. 여름 휴가때도 전날밤 뒤척이다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제주로 향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뒤척이다 뒤척이다 휴대전화 알람소리에 설익은 잠을 깬다.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집을 나선다. 새로 장만한 등산복과 등산화, 배낭이 내 몸에 꼭 맞는다. 이번 올레길은 너무 편하고 즐겁게 다녀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지난 여름휴가때는 몸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예전에 구입해둔 등산복과 등산화, 배낭을 사용했는데 2박 3일 내내 힘들었다. 등산용 양말이 없어 일반 양말을 신은 발은 물집으로 만신창이가 됐고, 등산복 바지는 허리가 너무 크고, 기장이 너무 길어서 마치 아이가 어른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그나마 예전에 구입해둔 여름용 등산복 상의는 그럭저럭 좋았지만 배낭은 너무 작은데다 어깨를 꾹 눌러서 올레길을 걷는 내내 불편했다.

이제 여름휴가의 불편이 없어진 것을 생각하니 이번 올레길이 더 설레인다. 지난번 여름휴가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여 김포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이번에는 공항버스를 이용해본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다. 첫 차 시간을 확인하고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아직 새벽. 지나가는 사람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인적이 없다. 처음 생각한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니 정류장이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안내문구가 눈에 띈다. 몇 번을 오락가락하면서 찾다가 결국 휴대전화로 공항버스 정류장을 확인하다.

몇 분을 기다리니 버스 한 대가 들어온다. 버스에 탑승하려고 하니 기사님이 표를 주라고 하신다. 얼마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뒤에 계신분이 어디가세요? 하고 묻는다. 김포공항 갑니다. 그랬더니 이 차는 김포공항 가지 않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기다리니 뒤에서 말을 걸었던 분이 김포공항 가는 버스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한다. 그 제야 뒤를 돌아보니 공항버스 정류장 대기소라는 간판이 보인다. 내가 너무 빨리 도착한데다 여기저기 헤메다가 찾은 정류장이라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기소로 들어가서 표를 구입하고(7,000원) 약 10분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한다. 공항까지는 약30~40분 거리. 지하철로 이동할때보다는 훨씬 시간이 절약되고 느긋하다. 아직 잠이 덜 깬 도시를 가로지르는 버스의 창가를 바라보다 문득 잠이 들 무렵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 도착한다. 국제선 청사 다음은 국내선 청사. 천천히 짐을 챙기고 내릴 준비를 한다. 버스가 국내선 청사에 도착하고 짐을 챙겨내린다.

새벽이지만 공항은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여름휴가 때는 지하철로 이동하다보니 충분한 시간에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비행기 출발 25분전에 도착하여 숨을 헐덕이며 수속을 했다. 여유도 없었고 제주로 출발하기전 설레임을 느껴볼 시간도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무렵 탑승이 시작된다. 다시 가슴이 설레여온다.

어릴적 그 곳은
날씨가 좋다. 초가을의 햇살이 비행기 창을 통해 들어온다. 녹색이 펼쳐진 들판을 달리던 비행기가 이내 파란색 빛을 뿜어내는 바다로 들어선다. 간간히 포말이 보이고 바다의 빛깔에 넋을 잃을 쯤 제주 도착 안내방송이 나온다. 한반도에 끝에 위치한 제주는 비행기로는 40분 거리. 잠깐 눈을 감으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제주를 떠난 몇 년간 잊고 지내고 갈망하면서만 지냈다. 하지만 올해만 해도 2번째 제주를 찾는다.

바쁜 현실과 무언가 잃어가고 있는 나에게 여유를 주고 싶었고, 홀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다. 육지와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아련한 기대감이 나를 제주로 이끌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공항청사로 들어온다. 여름휴가때처럼 제주공항은 바뀐 것은 없다. 느긋하게 신제주행 버스를 확인한다. 10월 2일(일) 일정을 잡으며, 어렸을 적 다녔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올레길로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로 신제주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류장에 내려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신제주성당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렸을 적 걸었던 그 길이 맞는지 더듬어 들어갈 무렵 눈에 익은 길이 나타난다. 10분여 걸으니 신제주 성당이 나타난다. 약간 변화가 있어보이지만 그 모습 그대로다.

성당에 들어서니 아직 사람이 없다. 학생 몇몇이 미사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학생미사다보니 학생들이 왔다갔다하며 미사를 준비하고 있다. 어렸을 적 성당은 정말 넓었는데 이렇게 좁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학생미사라 활달하고 경쾌하게 미사가 진행된다.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제주성당의 보좌신부님도 활달하게 미사를 집전하신다. 미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8코스 시작점으로 발을 돌린다.

바람과 함께 걷다 – 8코스
신제주 성당에서 큰 길가로 나와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탄다. 원래 8코스의 시작점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주공항에서 서귀포로 가는 리무진버스를 타야 하나 여름휴가 때 기억하는데로 그대로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발길을 옮겼다.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표를 사니 월평마을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다고 한다. 그때서야 생각이 난다. 서귀포행 리무진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을….

이것도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 생각하고 버스표를 구입한다. 버스가 삼등삼등 제주시내를 벗어난다. 다행이 비는 내리지 않지만 약간 구름이 낀 날씨에 바람이 제법 분다. 1시간여 달렸을까? 8코스가 끼고 도는 중문관광단지가 나오자 내려야 할 곳을 찾기에 급급하다. 내가 걸어야 할 코스가 어느정도 맞다 싶을때 내렸다. 그러나 앞 뒤 물어볼 민가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쓸쓸한 길만이 쭉 뻗어있다. 정처없이 걷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어가니 귤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아주머니에게 월평마을을 물어본다. 약간만 걸어올라가면 월평마을 이정표가 나온다고 한다. 친절하게 귤도 하나 건네주신다. 귤을 하나 까먹고 월평마을을 향해 걸어간다.

약간 올라가니 월평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그때 마침 버스 한대가 들어온다. 버스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몇 분 안 걸리니 타지 말고 걸어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한참 내려가도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와서 그런지 길이 고불고불해서 그런지 8코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나는 사람도 없고 바람도 사늘하게 분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쯤 지나가던 택시 한 대가 차를 세운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월평마을 가냐고 물어본다. 월평마을 간다고 했더니, 기사님도 월평마을 가니 타라고 하신다.

해녀식당의 회덮밥
해녀식당의 회덮밥
기사님은 콜을 받아서 1시까지 사람을 태우러 가는 중이라고 하신다. 기사님도 처음 가는 길이라며 어차피 가는 길이라 태우셨다고 한다. 기사님께 기다리셔야 할 곳을 알려드리고 8코스 시작점 송이슈퍼를 둘러본다. 일단 배가 고프다. 해녀식당에 들어가 회덮밥을 시킨다.

조용하지만 넓디 넓은 해녀식당은 마을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몇 분 후 먹음직스러운 회덮밥이 나온다. 시장하던 차에 몇 분 만에 뚝딱 회덮밥을 먹어치우고 걸을 준비를 하러 송이슈퍼로 간다.

송이슈퍼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한다. 오늘은 사람들이 좀 뜸하단다. 출발하기 전 나오던 콧물이 아직도 수도물처럼 쏟아진다. 화장지와 올레빵을 사고 배낭과 등산화를 고쳐 신는다. 자! 이제 출발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