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리, 유지, 2인자, 정경유착

향리는 조선시대 고을에서 사또(현감)를 도와 행정업무를 보는 신분상으로는 중인계층이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9급공무원정도 되는 신분이다. 이들은 각 지방의 행정업무를 도맡아 하며 성(城) 안에서 거주했다. 고을내에서 행정업무를 보며 여러 이권에 개입했기때문에 많은 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아쉬는 것은 신분이었다. 부는 얻었지만, 양반의 명예는 못 얻었기 때문이다. 양반이 되면 향리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양반이 되자니 너무 아쉽고, 그렇다고 향리로 남아있기에는 너무 서운한 그런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2인자였다. 2인자들은 1인자에게 기대며, 그들의 흉내를 낸다. 향리로 마찬가지로 양반에게 기대어 그들의 흉내를 냈다. 그들의 2인자 계급은 조선이 멸망한 후에도 이어졌다. 바뀐 시대에 발빠르게 적응한 향리들은 근대에 필요한 행정업무에 종사하며 부를 모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2인자였다. 1인자인 일제관료들에 기대어 2인자 행세를 해야했다. 비록 양반이 사라져 근대사회에서는 유지이자 엘리트 계층으로 행세했지만 양반이 사라진 자리는 일본 식민지 관료들이 차지했다.

지금의 정경유착의 뿌리는 이때부터 생긴것이 아닌가 한다. 모을데로 모았지만 결코 올라갈 수 없는 만년 2인자들. 정주영이 그랬고, 권노갑이 그랬다. 만년 2인자로 머물러 1인자에 기대어 그들을 흉내내고 그 자리를 노렸다. 하지만 조선시대 향리들이 그랬던것처럼 언제나 2인자에 머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