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핑

요즘 스와핑때문에 말이 많다.
얼마전인가 스와핑을 소재로 한 클럽 버터플라이가 관심을 모은적이 있었다.

스와핑이라는 것 자체가 배우자 교환 성관계이기 때문에 성윤리적인 부분이나, 동양적인 성윤리관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것이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스와핑의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왜냐면 섹스는 지극히 사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그 누구도 개인의 섹스방식에 대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개인이 어떤 섹스방식을 즐기던 그건 개인이 쾌락을 얻고자 하는 섹스의 방식일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스와핑은 약간 다른것 같다.

우선 우리나라의 스와핑은 고급(?)이다.
갖출것 다 갖추고 이룰것 다 이룬사람들이 마지막에 채우려 하는것은 쾌락이다.

이들에게 그동안의 섹스방식은 너무나 따분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놀이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마치 인터넷상에서 재밌는 ‘꺼리’를 찾아나서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새로운 놀이를 통해서 새로운 쾌락을 경험한다.
이전에 겪었던 쾌락보다 다른 쾌락을 느끼면 사람은 그것에 깊숙이 빠지고, 탐닉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스와핑을 차별화시키는 것은 그것의 ‘계급성’ 이다.

소위 말하는 배우고, 가진이들이 주축이 된다.
못배우고, 못 가진이들이 스와핑을 즐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스와핑이 계급성을 갖는 이유는 유교적인 세계관 덕분에 성에 대한 관념이 폐쇄적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처럼 성에 대한 관념이 개방적인 곳은 누구나가 스와핑에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유교적인 세계관이 오랫동안 지배했던 사회는 스와핑이 태어날때부터 계급성을 띌 수 밖에 없다. 결국 상류계급만이 손댈 수 있는 고급놀이문화(?)가 되는것이다.

누구에게나 쾌락을 즐길 권리는 있다. 하지만 고급놀이로서의 쾌락은 바람직하지 않다.